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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시마 다케오의 '어떤 여자'일상 2019. 6. 23. 21:59
일상을 기록하겠다고 한 지가 어언 반 년 전이지만, 변명을 해 보자면…
그동안 학교에 다니느라 바빴다. 그래도 이번 학기는 나름 수업에서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그 중 몇 가지 작품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 뒤로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주제로 한 에세이가 올라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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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시마 다케오(有島健郎)는 1910년에 창간한 문학지 ‘백화(白樺)’를 중심으로 활동한 백화파의 작가이다. 백화파는 십인십색의 개성을 가진 작가들이 모여 있었으며, 반자연주의를 지향하고 인도주의적 성격을 지녔지만, 낙관적이며 이상적인 면모가 강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회피했다는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아리시마 다케오는 백화파에서도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회적 약자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쓰거나, 소작민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분배하는 등 실천적 행동을 하는 사회비판적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중 ‘어떤 여자’는 1919년에 출간되었고, 당대의 ‘여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그의 활동 시기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그 중에서도 남성 작가가 쓴 작품은 굉장히 드물었다는 데에서 이 소설은 의미가 있다. 최근, 즉 2010년 후반부터는 페미니즘 운동이 꾸준히 화두에 오르는 시대가 되었다. #Metoo 운동을 시작으로 페미니즘은 전 세계에 다방면으로 퍼져나갔다. 이러한 시기에 동아시아 근대의 여성인권을 조망하는 이 작품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은, 향후 페미니즘의 진행에 있어서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어떤 여자’는 아리시마 다케오가 동료 작가 쿠니키다 돗포의 전처 ‘사사키 노부코’를 모델로 한작품으로, 전편과 후편이 나뉜 구성이다. 주인공은 ‘사쓰키 요코’라는 여성이고, 1900년대의 가부장적이며 여성이 현모양처이기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보란 듯이 자아중심적으로 행동한다. 아름답고 다재다능하며 총명한 그녀는 부모의 반대에도 자신이 원하는 결혼을 하고, 얼마 후에 다시 이혼을 한 후, 혼자서 전 남편의 아이를 낳고 기른다. 원치 않는 약혼자와 친척들의 강요로 인해 미국행 배에 타지만, 그 안에서 배의 사무장 구라치와 사랑에 빠져 일본으로 돌아온다. 귀국 후에는 구라치가 일을 그만두고 이혼을 하도록 부추기며 보란 듯이 살림을 꾸린다.
사회는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요코를 억누르고 여성의 자아 표출을 막는다. 요코는 자신이 태어나서는 안 되는 시대에, 태어나서는 안 되는 장소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녀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적은 남자였다. 이들은 여자가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존재이다.[1] 그래서 요코는 미국을 꿈꿨다. 그녀는 미국은 재능과 역량만 있으면 여자라도 남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생활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2] 그러나 요코는 구라치를 선택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후편에서 요코는 본인을 포함한 주변인을 가학적인 태도로 대하고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다 스스로 파멸했다.
이처럼 전편에서 작가는 당대 일본 여성의 삶을 여성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묘사하지만, 요코는 미국으로 가지 못하고 작가의 또 다른 주장인 ‘본능’에 의한 삶 즉 사랑을 선택하며 일본으로 돌아왔다. 후편에서는 선택의 결과가 묘사되는데, 그 삶은 그녀에게 병을 주고 그녀를 파멸시킨다. 이 지점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작가는 인간이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왜 정작 사랑을 선택한 요코는 파멸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작품 중 등장하는 작가 본인을 모델로 내세운 ‘고토 기이치’라는 인물의 언동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기이치는 요코의 약혼자인 기무라의 친구로 등장해, 요코가 기무라에게 정착하길 요구한다. 그는 기무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요코의 ‘유혹하는 힘’을 악마가 가진 능력이라고 말한다. 즉, 작가는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인 요코를 악마화하고 그녀를 파멸시킨 것이다. 이는 작가의 기독교적 성향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작가는 문란한 여성성의 파멸을 내세우며 조신한 여성성을 간접적으로 긍정한 셈이다.[3]
아리시마 다케오는 메이지와 쇼와의 시기 사이에서 인본주의를 주창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진 지식인이다. ‘어떤 여자’라는 작품은 약자 중에서도 여성에 초점을 맞춘 소설로, 그 당시 남성 작가가 여성의 삶을 고찰하고 이해하려 시도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사회에 저항한 주인공은 결국 파멸한다. 이는 작가가 당대의 여성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도 일본의 여성은 직장에서 하이힐을 복장 규정으로 채택하는 등 사회에서 여성성을 강요 받는다. 그로 인해 최근에는 직장 내 하이힐 착용을 강요하지 말자는 #Kutoo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 아리시마 다케오의 '어떤 여자'를 돌이켜보는 것은 향후 나아갈 페미니즘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1] 아리시마 다케오, 유은경 옮김, 어떤 여자, 향연, 2006, 162-3
[2] 위의 글, 110p
[3] 이은주, 일본의 근대초기 남성작가에 의한 ‘신여성’표상에 관한 고찰. 한국일본어문학회 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10, 6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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